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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지브리, 미야자키, 영화 해석)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지브리, 미야자키, 영화 해석)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재밌었다"는 말이 전혀 나오지 않았습니다. 영화관 문을 나서는 발걸음이 묘하게 무거웠고, 머릿속에는 딱 하나의 질문만 맴돌았습니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지?"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지막 장편,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화려한 액션도, 깔끔한 결말도 없이, 다 보고 나서 오히려 숙제 하나를 받은 기분이었습니다.



영화 해석 1. 마히토는 왜 불타는 병원으로 달려가며 모자를 붙잡았을까 — 지브리가 시작된 자리

영화 첫 장면이 꽤 오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도쿄 공습의 불길 속에서 마히토는 어머니를 찾아 미친 듯이 뛰어가면서도, 날아갈 듯한 모자를 손으로 꼭 붙들고 있습니다. 왜 하필 그 순간에 모자입니까. 저는 처음엔 그냥 디테일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게 이 영화 전체의 문을 여는 장면이었습니다.

의복은 세속적 집착을 상징합니다. 쉽게 말해, 인간이 가진 욕망과 체면, 현실에 묶인 감각을 가리킵니다. 마히토는 어머니가 죽어가는 순간에도 그것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마히토는 미야자키 하야오 본인을 투영한 캐릭터입니다. 어린 시절 군수 공장으로 부를 쌓은 아버지 덕에 풍요로운 성장을 했으면서도, 그 특혜를 거부하지 못하고 숨죽여 지냈던 하야오의 비겁함을 고백한 장면입니다.

제가 이 대목에서 솔직히 뜨끔했습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붙었으니까요. 영화는 처음부터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하야오는 이런 비겁한 자신과 대비되는, 정의롭고 당당한 소년소녀들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을 그리겠다고 다짐했다고 밝혔습니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탄생은 결국 이 첫 장면의 부끄러움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영화의 오프닝이 단순한 배경 설명이 아니라, 지브리가 왜 존재하는지를 설명하는 선언문이었던 셈입니다.

마히토의 어머니 히미는 불의 능력을 씁니다. 여기서 불이란 단단하고 굳은 것을 녹여 새로운 형태로 만드는 창조의 에너지를 상징합니다. 일본 신화 속 '코노하나노사쿠야히메'가 불 속에서 아이를 낳으며 결백과 강인함을 증명했듯, 히미의 불은 모성애이자 창작에 대한 신념입니다. "불에 타 죽는 건 괜찮다. 너를 낳는 건 멋진 일"이라는 대사는, 창작자의 언어로 번역하면 "창작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다"는 말이 됩니다. 이 영화의 원제이기도 한 동명의 책(출처: 요시노 겐자부로 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도 "삶에서 그 무엇보다 가치 있는 건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썼습니다. 히미의 불과 이 문장은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 마히토 = 어린 시절 미야자키 하야오의 자화상, 비겁함과 세속적 집착의 상징
  • 히미의 불 = 모성애이자 창조의 에너지, 돌(고지식함)과 대비되는 속성
  • 지브리의 탄생 = 자신의 비겁함과 마주한 하야오가 선택한 창작의 방향
  • 소레레이트(일본 풍습) = 언니의 남편과 결혼해 대를 잇는 관습으로, 나츠코의 등장 배경
요약: 영화의 첫 장면은 지브리의 탄생 선언이며, 마히토는 하야오 자신의 비겁함과 창작에 대한 신념을 동시에 담은 캐릭터입니다.

 

영화 해석 2. 돌탑은 왜 지옥의 문이었나 — 미야자키가 인정한 지브리의 모순

영화에서 가장 긴 시간을 차지하는 공간이 돌탑 안의 세계입니다. 저는 처음에 이게 그냥 판타지 배경인 줄 알았는데, 탑 입구에 새겨진 문구를 보고 멈칫했습니다. "신의 권능이 나를 만들었다." 이건 단테의 《신곡》 지옥문에 새겨진 글귀입니다. 쉽게 말해, 이 탑은 처음부터 지옥이었던 겁니다.

그렇다면 지옥으로 설계된 이 탑이 상징하는 건 무엇일까요. 저는 여기서 꽤 오래 생각을 멈췄습니다. 탑은 지브리 스튜디오 그 자체입니다. 대할아버지가 하늘에서 떨어진 돌을 가리기 위해 탑을 세우고 수많은 인부를 희생시켰듯, 지브리도 선의만으로 세워진 공간이 아니었다는 것을 하야오 스스로 인정한 겁니다.

탑 안의 앵무새들은 맹목적인 모방과 집단적 답습을 상징합니다. 여기서 맹목성(盲目性)이란 판단력을 잃고 타인이나 집단을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앵무새들이 나치를 연상시키는 문양을 들고 왕을 섬기며 환호하는 장면은, 파시즘의 작동 방식과 정확히 닮아 있습니다. 창작의 세계에서도 같습니다. 모방에 익숙해지면 자신만의 시선을 잃습니다.

무덤에 새겨진 "나를 배우면 죽는다"는 문구도 같은 맥락입니다. 불교의 윤회를 상징하는 수레바퀴 문양인 다르마차크라(Dharmacakra)가 새겨진 옷을 입은 키리코가 등장하면서, 이 무덤은 인간의 추악한 역사가 반복되는 공간, 팔도윤회(八道輪廻)의 나락을 상징하게 됩니다. 다르마차크라란 불교에서 진리의 수레바퀴를 뜻하며, 끝없는 순환과 윤회의 고리를 나타내는 개념입니다.

그리고 13개의 돌. 이게 영화를 보면서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찾아봤더니 13은 완성의 숫자 12 다음에 오는 것, 즉 한 우주의 끝이자 새로운 순환의 시작을 상징합니다. 지브리가 만든 작품의 수와도 맞닿아 있고, "삼일에 하나씩 쌓으라"는 말은 3년이 걸리는 지브리 애니메이션 한 편의 제작 주기와도 겹칩니다. 온 마음을 다해, 마치 수행을 하듯 만들라는 뜻이었던 겁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아들 미야자키 고로에게 했다는 말, "애니메이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 해도, 세상을 바꾸겠다는 일념으로 만들어라"는 말이 겹쳐 읽혔습니다(출처: 스튜디오 지브리 공식 홈페이지).

결국 하야오는 이 영화를 통해 "나는 좋은 의도만으로 지브리를 만든 게 아니다. 모순과 악의도 함께 있었다"고 스스로 인정한 겁니다. 이 고백이 제 경험상 이 영화에서 가장 어른스러운 장면이라고 느꼈습니다.

요약: 돌탑은 지브리 스튜디오 자체를 상징하며, 하야오는 이 영화를 통해 선의와 모순이 공존했던 자신의 창작 역사를 솔직하게 인정합니다.

 

영화 해석 3. 마히토가 돌조각을 들고 나온 이유 — 이 영화가 우리에게 남긴 것

마히토는 탑을 떠나면서 그 세계를 구성하는 돌조각 하나를 가지고 나옵니다. 왜가리는 나중에 말합니다. "그 돌이 있어서 거기서의 기억을 잊지 않은 것"이라고요. 저는 이 장면에서 영화가 하고 싶었던 말이 최종적으로 전달됐다고 느꼈습니다.

그 돌은 무엇일까요. 자신의 악의와 마주했던 시간, 나츠코의 진심, 어머니의 사랑을 확인한 기억, 그리고 처음으로 진짜 친구를 얻은 경험. 그 모든 것의 총합입니다. 상처를 감추고 지워버리는 게 아니라, 그것을 간직하고 기억하는 것이 성장이라는 말입니다.

영화 내내 왜가리와 마히토의 관계를 보면서도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가리가 거짓말로 마히토를 꾀어 상처를 냈고, 둘은 싸웠습니다. 하지만 함께 역경을 헤쳐나가면서 오르페우스 신화처럼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고 지옥에서 빠져나와야 하는 순간을 함께 겪고, 마침내 서로의 상처를 보듬습니다. 오르페우스 신화(Orpheus myth)란 지하 세계에서 탈출할 때 뒤를 돌아보면 다시 그곳으로 끌려 들어간다는 그리스 신화를 말합니다. 영화 속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외침은 이 신화를 직접 차용한 것입니다.

제가 영화관에서 나오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건 사실 메타포(비유 또는 은유)나 상징보다, 마지막에 도달하는 그 단순한 메시지였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함께할 가족과 친구가 있다면 나아갈 수 있다는 것. 거창하지도 않고 새롭지도 않은 말인데, 이 영화는 그걸 두 시간 동안 지옥과 창조의 세계를 빌려서 이야기합니다.

와라와라가 하늘로 올라가 인간이 된다는 설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키리코는 "와라와라는 상승하여 인간이 된다"고 말합니다. 이 와라와라는 콘텐츠의 아이디어, 쉽게 말해 올바른 인간 형성을 위해 필요한 이야기의 씨앗을 상징합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하야오는 지브리 애니메이션이 우리를 형성하는 에너지가 되기를 바랐던 겁니다. 그리고 제 경험상, 지브리의 영화는 실제로 그런 역할을 해왔습니다.

하야오는 이 영화를 통해 말합니다. "나는 이렇게 살아왔고, 이렇게 살아갈 거야. 그대는 어떻게 살고자 해?" 그 질문을 받은 저는, 이 선의의 돌조각을 오래 간직하면서 또 다른 누군가에게 건네고 싶어졌습니다.

요약: 마히토가 들고 나온 돌조각은 상처와 성장의 기억 그 자체이며, 이 영화는 하야오가 우리에게 건넨 선의의 질문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스토리가 너무 어려운데 꼭 다 이해해야 하나요?

A. 저도 처음 봤을 땐 절반도 이해 못 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다 이해하지 못해도 영화가 던지는 질문 자체는 충분히 전달된다는 겁니다. 메타포와 상징을 하나하나 풀어내는 건 나중에 해도 됩니다. 일단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감각만 가지고 나오셔도 이 영화는 제 역할을 다 한 겁니다.

 

Q. 왜가리(아오사기)는 왜 계속 마히토를 따라다니는 건가요?

A. 아오사기는 이집트 신화에서 시간과 윤회를 관장하는 존재이기도 하고, 일본 민담에서는 사람을 꾀어내는 새 요괴이기도 합니다. 이 두 속성이 겹쳐, 왜가리는 마히토의 상처를 벌리면서 동시에 그를 성장으로 이끄는 역할을 합니다. 상처를 낸 자가 결국 그 상처를 치유해준다는 이 영화의 핵심 주제가 왜가리를 통해 구현되는 겁니다.

 

Q. 13개의 돌이 무슨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A. 13은 완성의 숫자 12 다음에 오는 것으로, 한 사이클의 끝이자 새로운 시작을 상징합니다. 하야오가 감독하거나 기획한 지브리 작품의 수와 맞닿아 있기도 하고, 삼일에 하나씩 쌓으라는 말은 지브리 애니메이션 한 편에 보통 3년이 걸린다는 사실과도 겹칩니다. 결국 지브리의 역사 전체를 선의로 쌓아 올린 돌탑으로 비유한 겁니다.

 

Q. 나츠코 이모는 자발적으로 산옥에 들어간 건가요, 잡혀 들어간 건가요?

A. 스스로 들어간 것입니다. 산옥(우부야)은 일본에서 출산 전후 산모를 격리하는 공간으로, 남자가 들어가는 것이 금기였습니다. 나츠코는 자신의 존재가 마히토에게 상처가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를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그 공간으로 걸어 들어간 겁니다. 산복을 입고 숲으로 걸어가는 장면은 환상이 아니라 그 자체가 사실이었습니다.

 

Q. 미야자키 하야오의 진짜 마지막 작품인가요?

A. 이 영화가 공개될 당시 하야오의 마지막 장편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브리는 이후 닛폰 테레비에 경영권을 매각했고, 후계자 문제도 정리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앞으로 지브리 이름으로 작품이 나온다 해도, 하야오의 직접 연출 작품으로서는 이 영화가 마지막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론

영화관을 나오면서 받은 그 묵직한 숙제를, 저는 한동안 잊지 않으려 했습니다. 마히토가 돌조각을 들고 나왔듯, 저도 이 질문 하나를 들고 나왔습니다.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신의 비겁함을 고백하고, 모순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선의를 쌓아온 사람이었습니다. 그 삶의 방식 자체가 이 영화의 답이었습니다.

어렵고 난해한 영화인 건 맞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이 영화는 다 이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신에게 이 질문을 한 번 진지하게 던져봤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지브리 특유의 귀여운 와라와라와 먹방 장면들은 덤입니다. 한 번도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본 적 없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이유가 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nN_8ZeSs0_M&t=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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